사건이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들, 사건들의 순간들은 극도의 긴장감과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겨준다. 사건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 사건의 기억을 되돌려보면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기 어렵고,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 될 지 모른다. 사건은 사건 자체의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간다. 시간이 멈춰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직 사건의 순간만이 기억에 오래 머무른다.
1 .폭력
어디선 짐승이 우는 소리가, 어디선 쾌활하게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이, 어디선가 그렇게도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또 어디선가 누군가를 타격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이 들렸겠는가?
나는 그것을 폭력으로 부르겠다. 무차별한 폭력으로 부르겠다. 폭력.
폭력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폭력을 경험한다. 누구에게나 폭력을 경험해본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형식을 가지든지 간에 말이다. 심지어 폭력을 막기 위해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감각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이 나는가? 폭력이 난무하는 순간들. 언제부터 이 폭력이 시작되었는지. 태초 때부터 폭력은 인간과 함께하고 있었을지도.
공포, 혼란, 불안, 분노, 당황, 슬픔, 기쁨, 혐오, 환희, 폭주.
이실직고 말하겠다. 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며 관찰자이다.
나는 관계를 통해, 내가 누군가의 대화를 통해, 말을 들음으로써 피해자가 되고 말을 함으로써 가해자가 되고 작업 속에 나와서 그 장면을 보면 관찰자가 된다. 나는, 아니 주변은 차별을 겪고 있고 폭력에 대해 목격했으며 폭력을 경험했다. 다들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나라고 해서 해서 폭력을 피할 수 있을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다. 너무 많은 폭력이 주변에 있음에 어느 순간 감정들은 나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폭력에 의한 사건은 취해서 시작을 알 수 없고 끝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로지 사건의 순간들만 기억된다.
2 컷어웨이숏 회화
여러 개의 캔버스 조각들을 하나의 작업으로 묶는다. 기억의 편린들. 사건의 편린들. 이것들은 추상적으로 나타내어지면서 동시에 구상적으로 나타내어진다. 사건에 대한 기억들은 구상적이지만 추후에 기억해내 가면 추상적으로 변화한다. 그 당시의 느낌들과 내가 봤던 색감들. 기억은 그렇게 재구성된다. 나는 이 지점을 활용하여 영화적 용어인 ‘컷어웨이숏 회화’, 점프컷 회화’로 부르고자 한다. 분명 한 폭에 담겨질 수 있지만 편린들, 조각들은 쪼개어져 내가 정말로 그것을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억해 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정신분열적 사고를 내 붓질을 이용해서 표현하고자 한다.
컷어웨이숏은 주요 동작의 흐름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으나 두 숏 사이에 위치하는 장면 정도로 설명된다. 즉, 이야기와 관련 없는 사물이나 상황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중요 장면과 정식으로 상관 없어 보이나 은유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F1경기를 한다.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경주용 차를 화면에서 보여주고 갑작스럽게 힘차게 응원을 하는 관중석을 비춘다. 이를 통해 얼마나 흥분으로 고조된 경기장을 보여주는 형식. 나는 이 지점을 가져가고자 한다. 그렇기에 앞서 말했듯이 구상적 회화를 중심으로 추상적 모습을 가진 회화가 종종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시키기보단 동시적으로 극적인 상황 연출에 도움이 된다. 화면의 분할로 인해 사이 사이에 공간이 생기며 관객들이 사건이 어떻게 흐를지에 대해, 이미지에 대한 호흡을 할 수 있는 ‘숨’을 주는 동시에 긴장감을 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