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순간을 컷! – 컷, 그리고 절정, 결말 없는 이야기
# 고장 난 기억
기억은 선택적이다. 그런데 선택적일까? 나는 선택할 수 없다. 기억의 메커니즘은 내 의지 밖에서 작동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또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순간에 치솟았던 감정의 클라이맥스뿐이다.
감정의 장면들이 뇌를 한 방 맞은 것처럼 사고회로를 고장 나게 만든다. 이것이 나의 기억의 흐름이다. 선형적 시간 감각이 무너진다. 시간은 파편화된다. 장면은 절정에서 멈춘 채, 다음 컷으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 지금 여기, 그리고 혼란
결국 나는 조각나고 왜곡된 기억들과 감정들의 집합 속에서 하루를 되돌아본다. 여전히 선명하게 붙잡히는 것이 없다. 기억은 재현이 아니라 변형이며 과장과 생략 속에서 서사의 구조가 무너지고 장면들은 방향을 잃는다.
나는 그 속에서 스스로 기억을 선택하기보다는, 붙잡힌 듯 네거티브한 상황에 끌려간다. 그것들은 끝나지 않은 감정이며 여전히 현재형으로 지속된다. 이는 단지 과거의 잔상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나의 시선과 겹쳐 있다.
# 결말 없는 만화
단 한 장의 찢겨진 만화책이 우연히 발에 채인다. 그것을 주워 본다. 명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는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다.
작업 속에서는 캐릭터화 된 인물들이 컷 안에 담기고, 배경은 추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둘의 이질감은 마치 DJ가 음악과 음악을 잇는 순간 — 트랜지션과 믹싱이 겹쳐지는 지점 — 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그 안에서 작업은 언제나 ‘절정’에서 멈춘다. 서사는 연결되지 않고, 결말은 유예된다.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없다. 단 한 장의 찢겨진 만화를 주워 보는 순간, 나는 그 장면이 무엇을 전하려는지, 그리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었을지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끝내 만화책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